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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CF와 FC 바르셀로나 사이의 경기를 가리키는 용어로 세계적으로 가장 흔히 쓰인다. 카탈루냐어로는 엘 클라식(El Classic)이 되며 간혹 엘 수퍼클라시코(El Superclasio, 클라시코의 뜻을 한층 더 강화함), 엘 그란 데르비(El Gran Derbi, 큰 더비)나 엘 데르비 에스파뇰(El Derbi Espanol, 스페인의 더비)로 불리기도 한다. 중남미의 스페인어권에서는 엘 클라시코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남미의 다른 더비 경기들과 구분하기 위해 엘 데르비라고 더 자주 불린다. 스페인 역사에 남겨진 유명한 스페인 내전은 엘 클라시코의 역사를 가르는 큰 기준이 됐다.
레알 마드리드 CF 와 FC 바르셀로나
⇒ 첫 경기는 1902년 5월 13일,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의 전신인 코파 데 라 코로나시온(Copa de la Coronacion)에서의 대결이었다. 이 경기는 FC 바르셀로나가 3-1로 승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기 도중 크게 과열되는 현상없이 지나갔으나 14년 후 코파 델 레이에서 다시 대결하게 되었다. 양쪽이 서로 홈 경기를 이겼으므로 재시합으로 승부가 결정나게 되었는데, 첫 재시합이 6-6으로 끝나 두 번째 시합이 필요해졌고 문제는 여기서 붉어졌다. 레알 마드리드가 4-2로 리드하자 FC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심판의 판정이 불공정하다며 경기 도중 퇴장해버렸고 레알 마드리드는 이후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어슬레틱 빌바오에 0-4 패배를 당했으나 카탈루냐에서 온 팬들의 위협때문에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경기장을 떠나야 했다. 이후 1936년 내전이 발발하자 레알 마드리드는 보다 후방에 위치한 스페인 동북부의 카탈루냐 리그에 참여하고 싶다는 요청을 했지만 FC바르셀로나의 반대로 인해 이뤄지지 않았다.
⇒ 내전 이후 1943년 6월 13일 마드리드에서 코파 델 레이 준결승 2차전이 열렸다.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진 1차전에선 FC바르셀로나가 3-0으로 승리했고 결승 진출이 유력시되었다. 그러나 프리메라리가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이며 10위에 그친 레알 마드리드가 뜻밖에도 FC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무려 11-1로 승리했고 이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은 카탈루냐 언론들을 통해 2차전이 시작되기 직전 스페인 국가보안부장이 FC바르셀로나의 탈의실에 들어와 “당신들이 마음놓고 축구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것도 다 우리 정권이 그것을 눈 감아주기 때문이지.” 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를 진지한 위협으로 받아들인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제대로 경기에 임할 수 없었고 전반전에 이미 8-0으로 밀리게 되었다. 정치적 위협은 곧 선수들의 선수 생명, 팀의 명맥유지 그리고 선수, 스텝 등의 가족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에 경기에 임하는데 더욱 힘들어했다. 이에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후반전에 불참하려 했으나, 결국 압력에 의해 후반전도 마저 치르게 되었고 11-1이라는 말도 안되는 결과가 나왔다. 경기 후 스페인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결국 양 클럽의 구단주가 스페인 축구 협회의 권고로 퇴임하기에 이르렀다. 후에 레알 마드리드의 구단주가 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이 경기에 대해 FC바르셀로나 측에 정식으로 사과했고, 이 스코어 또한 스페인 축구 협회에 의해 무효화되었다.
근래의 사건들 중 큰 사건은 2010년 11월 30일 레알 마드리드 CF가 FC바르셀로나에게 5-0 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참패한 경기에서 후반 인저리 타임이 거의 끝날 무렵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가 드리블 돌파 도중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로부터 거친 태클을 당하자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몰려와 거친 태클에 대해 어필을 하던 중 푸욜의 뺨을 밀치고 이후 바르셀로나의 골키퍼 빅토르 발데스의 목을 잡고 밀치는 비신사적 행위로 퇴장을 당했고 라모스는 퇴장을 당하면서도 바르셀로나의 사비 헤르난데즈가 대화를 걸어오자 역시나 뺨을 밀치며 나가버리는 등 스포츠맨쉽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경기 직후 이 사건은 전세계가 주목했던 거대한 경기의 격을 떨어뜨린 행위라며 비판을 받았다. 더욱이 2010 남아공 월드컵 축구 대회에서 스페인이 우승할 당시 우승 주역들이 주를 이루었던 경기에서 터져버린 사건이였기에 더욱 안타깝게했다. 본래의 라이벌 의식에 더해져 5-0이라는 충격적 스코어 그리고 스포츠맨쉽의 상실이 낳은 조금은 축구계와 팬들에게 씁쓸했던 사건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세르히오 라모스가 바르셀로나의 카를레스 푸욜의 뺨을 밀치는 사건
⇒ 이 두 팀간의 신경전은 필드 바깥에서도 치열했다. 1953년 FC바르셀로나는 콜롬비아의 명문 클럽 CD 로스 미요나리오스(Los Millonarios)의 스타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Alfredo Di Stefano)와 이미 이적에 합의한 상태였는데 디 스테파노는 구단으로부터 이적 허가가 나오기도 전에 독단적으로 콜롬비아를 떠나 스페인에 입국하였으므로 법적 문제가 생겼다. 이 때문에 스페인 축구 협회는 디 스테파노가 FC바르셀로나에 들어가는 것을 일단 중지시켰는데 이 와중에 레알 마드리드의 구단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개입해 디 스테파노 영입을 시도했다. 법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상 디 스테파노와 FC 바르셀로나의 계약 역시 유효화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경우에 따라선 디 스테파노가 FC바르셀로나가 아닌 다른팀으로 이적하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5월부터 이어진 수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1953년 9월 15일 양측의 구단주인 카레토와 베르나베우는 디 스테파노가 다음 4년 동안에는 1시즌마다 양 팀에서 번갈아가며 뛴다는 협약에 서명했다. 이 결정은 특히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에서 강한 불만을 자아냈고, 여론을 의식한 카레토는 디 스테파노가 안전히 레알 마드리드로 넘어가는 것에 동의함으로써 디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와 4년 계약을 맺게 되었다.
디 스테파노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대표적인 사건의 주인공을 한 명 더 보자면 포르투갈 축구의 황금세대 중심이자 윙포워드의 시초격인 루이스 피구이다. 그는 1995년 부터 2000년까지 FC바르셀로나 소속이었고, 주장 역할까지 맡았으며 인기가 대단했다. 그러나 2000년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을 한것이다. 이적 직후 처음으로 FC바르셀로나의 홈 구장인 캄프 누에 발을 들였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2002년 11월 23일 그가 두 번째로 캄프 누 원정 경기에 나섰을 때 사건이 터졌다. 경기 시작 전에 그에 대한 흑색 선전이 난무했고 급기야 경기 도중 바르셀로나 관중들이 피구를 향해 잡다한 물건들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유리명, 당구공, 잭나이프 등 맞을 경우 큰 부상 내지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들이였고 어떤 관중은 돼지 머리를 집어던지며 피구를 비난하고 조롱했다. 피구가 코너킥을 차려고 할 때 상황이 심각해지자 주심은 15분간 경기를 중지시켰다. 이 경기 후 스페인 축구 협회는 FC바르셀로나가 2회 동안 캄프 누에서 경기를 하지 못하도록 결정했으나 바르셀로나측은 이 조치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했고, 결국 2005년 8월 1일 양측은 바르셀로나가 4000유로의 벌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루이스 피구를 조롱하는 캄프 누의 관중들
(원 안은 당시 투척한 돼지머리를 확대한 사진)
⇒ 독립을 원했던 카탈루냐인들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FC바르셀로나, 그리고 그것을 억압했던 군사 정권의 힘을 얻어 성장한 레알 마드리드 이 두 팀간의 더비 경기는 단순 경쟁 심리에 의해 이루어진 더비 경기가 아닌 민족과 민족간의 갈등,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간의 갈등이 빚어낸 깊고 깊은 정치적, 역사적 뿌리가 만들어낸 더비 경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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