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젤 참사
1985년 5월 29일 유러피언컵 결승전이 열린 벨기에 브뤼셀의 보두앵 경기장에서 이탈리아 세리에A 유벤투스FC와 잉글랜드 리버풀FC 서포터 사이에 벌어진 싸움으로 인해 39명이 사망하고 454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난폭하기로 유명했던 리버풀FC의 더 콥과 역시 만만치 않게 거칠기로 유명했던 유벤투스FC의 울트라(이탈리아에서 난폭한 서포터들을 일컫는 훌리건과 같은 개념) 간의 다툼이였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쇠파이프와 흉기로 유벤투스 관중석을 향해 가는 리버풀FC의 훌리건들
관중석을 덮친 리버풀FC의 훌리건들은 유벤투스FC의 울트라들 뿐만 아니라 일반 관중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콘크리트 벽이 무너지며 일부 관중이 압사당하고 스텐드에서 떨어지며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게된다. 사태는 가까스로 진정되었고 경기는 시작되었다. 정신없이 진행된 경기는 미셸 플라티니의 골로 유벤투스FC가 승리하며 우승컵을 가져갔다. 그러나 당시 아수라장이였던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던 선수들은 멀쩡한 상태에서 경기를 가질 수 없었다. 그 당시 경기를 뛰었던 선수들의 생생한 증언은 얼마나 긴박했고 참혹했던 상황이였는지 잘 알 수 있다.
“참사가 벌어진 후의 경기 내용들은 아무것도 아니였습니다.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의 파울이였으나, 심판은 페널티킥을 지시했고 플라티니가 득점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오심은 피치 바깥에서 일어난 일과는 상관이 없었어요. 그 경기에 뛴 선수들, 유벤투스 선수들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동일할겁니다. 유러피언 컵 결승이라기보다는 그냥 경기였죠. 모두들 ‘빨리 끝내고 우리 가족들이 무사한지, 다른 사람들이 무사한지 보러가야 해.’ 이런 생각들을 했을겁니다.”
케니 달글리쉬(Kenny Dalglish) 당시 리버풀FC 공격수, 전 리버풀FC 감독
“몇몇 리버풀 팬들이 저지른 일은 용납하기 어렵지만, 상대방 서포터들이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던져대면 가만히 참고 있기란 당연히 힘든 일입니다. 1년 전에도 돌에 맞아서 심하게 아파본 사람이라면, 다시는 그렇게 던지도록 놔두지 않을겁니다. 그렇게 비극이 시작된 것이죠. 우리는 이탈리아 팬들이 우는 것을 보았고, 그들은 우리가 호텔을 떠날 때 우리 버스를 때려댔어요. 우리가 브뤼셀을 떠날 때 이탈리아인들은 화가 나 있었죠.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39명의 동포들이 죽었으니까요. 수많은 경찰들이 버스를 보호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어떤 이탈리아인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가 앉아있는 창가로 얼굴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명을 지르고 울고 있었죠.”
필 닐(Phil Neal) 당시 리버풀FC 수비수, 주장
“리버풀이나 유벤투스에겐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항상 해온 말이지만,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도대체 누가 거대한 두 클럽이 붙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그런 부적당하고 낡아빠진 경기장을 선정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분명히, 바르셀로나도 개최할 능력이 있었고, 베르나베우에서도 열릴만한 경기였는데, 도대체 왜 그런 스타디움에서 열린 것일까요?”
리버풀FC의 훌리건들의 무차별적 폭력 행위로 아수라장이 된 경기장
⇒ 이 사건으로 훌리건 29명이 구속되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잉글랜드의 클럽팀이 5년간 국제 대회 출전을 금지당한는 중징계를 받는 등(리버풀FC는 7년간 출전 금지 처분을 받음) 잉글랜드 축구의 서포터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중 하나이다.
헤이젤 참사의 참혹했던 당시 현장
⇒ 1984년 유벤투스 팬들이 리버풀 팬들을 일방적으로 폭행한 삐뚤어져버린 라이벌 의식, 그에 대해 똑같은 폭력으로 복수한 리버풀FC 훌리건들의 폭력성, 잘못된 경기장 선정으로 뭇매를 맞게된 유럽축구협회의 실수가 불러일으킨 참사였다.